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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당신을 너무 사랑해


/ 황병승, 아름답고 멋지고 열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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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외각에 인형을 만드는 인형사가 살고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쿠로오 테츠로. 인형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파는 일을 하는 그는 마을에 사는 한 청년을 짝사랑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이 알고있는 짝사랑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 전염병이 한번 돌기 시작했고 마을 외각에 살던 쿠로오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던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역병이 돌자 마을에서 건강했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죽어나갔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청년 역시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그가 역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쿠로오는 외각에 위치한 자신의 가게이자 집에서 그날 밤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사람을 잊지 못해 밤낮으로 움직여 인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와 똑같이 닮은 인형을 말이죠. 체형도 키도 생김새도 죽은 그사람과 똑같이 만든 쿠로오는 인형에게 '오이카와 토오루'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자신이 짝사랑하던 사람의 이름을 인형에게 붙여준 것이였죠.


쿠로오는 매일같이 오이카와 인형을 관리해주었습니다. 먼지가 쌓이지 않게 매일 먼지를 털어내주었고, 혹여 벌레라도 꼬일까 집에 벌레가 들지 못하도록 약을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관절이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했으니 규칙적으로 관절에 기름칠을 해주었고 혹여나 흐트러질까 조심조심 다루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쿠로오가 만든 오이카와 인형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같은 성격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그에게 사랑을 속삭여주었습니다. 쿠로오는 처음엔 기뻤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되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거든요.



다시 되살아난 그가 자신에게 직접 사랑한다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지만 저에게 사랑한다 말해주는 이가 자신이 만든 인형이라는 것을 알고난 후로는 인형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형은 저에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그것은 그저 인형일뿐 진짜 그가 아니였으니까요.





" 쿠로쨩 왜? "


" ..아냐. 아무것도. "





쿠로오는 오이카와를 볼때마다 살아있던 오이카와가 생각나서 언제나 인형을 볼때면 그는 슬픈눈을 하고 있었어요. 오늘도 역시 그런 눈을 하고 있어서일까 인형이 쿠로오에게 물어왔습니다. 쿠로오는 그저 아니 라고 답하며 인형에 관한 관심을 끊고 제 할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판매를 하고 다시 인형을 만들고 그런 일상이 하루하루 지나가던 중 인형 오이카와가 쿠로오에게 말했습니다.





" 왜 날 그런눈으로 보는거야? 나는 널 사랑하는데, 넌 왜 날 슬픈 눈으로 봐..? "


" 글쎄, 왜일까. "





저에게 마치 아이처럼 물어오는 인형의 물음에 쿠로오는 전과 같은 얼굴로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시 제 할일을 하기 위해 손을 바삐 움직였습니다. 인형 오이카와의 아이같은 행동은 그 이후로도 계속 되었습니다. 쿠로오가 일하다가도 곁으로 와 어리광을 부리거나 아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쿠로오를 바라보지만, 쿠로오는 그런 인형의 행동을 받아주면서도 그의 행동하나하나에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인형은 쿠로오가 자신을 대하는것에 진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선 슬퍼했지만, 그래도 그가 좋다면 자신도 괜찮다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인형은 주로 쿠로오의 곁에 머물렀지만 혼자서 다른곳을 돌아다닐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딘가에 부딪혀 관절이 하나 부서지게 되었는데, 인형은 그것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곁에 있는 시간이 많은 쿠로오가 그걸 눈치채지 않았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쿠로오에게 들켜 혼났지만, 그가 자신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은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쿠로오는 조금씩 조금씩 인형 오이카와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었습니다.



인형인 오이카와는 비현실적인 존재여서일까 남들보다 수명이 배로 짧았습니다. 쿠로오와 인형이 같이 살게된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인형은 날이 갈수록 낡아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쿠로오가 아무리 부서진 곳을 고쳐주어도 매일같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기름칠을 해주어도 인형이 낡아가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낡아가는 것을 매일같이 숨기던 인형은 결국 쿠로오에게 그 사실을 들켜버리게 되었습니다. 인형은 두려웠습니다. 자신이 이대로 낡아서 부숴져 버리면 쿠로오는 누가 신경써주지. 누가 돌봐주지. 누가 사랑을 말해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형은 제 부서진 무릎관절을 고쳐주는 쿠로오의 어깨를 붙잡고선 하염없이 흐느꼈습니다.





" 쿠로쨩 나 어디 안갈거야. 쿠로쨩 버리고 안갈거야. 그러니까-... "





인형이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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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말하는 인형을 보며 오이카와가 죽었을 당시의 저를 보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짝사랑하는 상대가 손쓸새도 없이 죽어버리는 그런 상황과는 정 반대였지만 어딘가 자신과 같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쿠로오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형이던 인간이던 오이카와는 오이카와라고 그래서 쿠로오는 그 다음부터 여러 마을을 돌며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이 살아움직이는 경우가 흔한일은 아니였지만 흘러흘러 들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예 없는 일도 아니였기에 쿠로오는 인형이 살아서 움직였다는 마을을 돌며 인형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수소문하였지만 인형이 살아난 상태에서 수명을 늘리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쿠로오는 이제 겨우 깨달았는데 다시금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허탈하면서도 슬픈 감정이 몰아쳤습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고 인형 오이카와의 몸이 이제는 더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황이였습니다. 고쳐도 고쳐도 망가지는 상황에 쿠로오는 그저 인형을 침대에 뉘여주고선 곁에 앉아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인형은 제손을 꼬옥 잡고있는 쿠로오를 보며 자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작게 웃어보이며 말했습니다.





" 있잖아... 쿠로쨩이 나한테 주는게 사랑이 아니라 해도 괜찮았어. 내가 사랑해주면 되는거니까 아니여도 괜찮았어. 그러니까- "





울지마 쿠로쨩. 인형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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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방적인 짝사랑은 사랑이라고 보긴 아무래도 어렵지. "


" 응? 괜찮아! 그럼 나만 사랑하지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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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내가 사랑할 차례구나. 오이카와. "





쿠로오가 이젠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인형 오이카와를 붙잡고서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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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네가 있던 그 순간속에 살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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